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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톰카프 궁전, 피에르롯티 찻집

 피에르 롯티 언덕에서

내려다 본 이스탐블

 

이 곳의 카페테리아는 주변 경관이 아름답다. 프랑스 작가 패에르폿티가 표현 한대로

유리바다에 구르듯 빠르게 움직이는 크고 작은 배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석양의

황금빛으로 물든 골든 혼의 모습은 가슴이 벅차기까지 하다. 왠지 신비스런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곳에 앉아 마시는 차 한잔은 독톡하기만 하다

 

이 언덕의 유래는 프랑스 장교가..

파견 근무 하던 중..귀족의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단다.

귀족의 세번째 여인은 ..다른이들의 도움으로 장교과 만남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곳이

공동묘지에 있는 묘지기들이 차를 마시는 카페였다고..,

장교는 귀국하게 되고..

모든 것을 정리하고 여인의 품으로 달려왔지만

그여인은..이미 처형되어서 이 언덕의 묘지에 안장 되었고

장교는 그곳에서 여인을 그리워하면서..오래도록 살려고 했지만

추방 당하고 만다.

추방당하고면..장교의 소원은 가묘라도 그 여인옆에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하고

떠났고...안타가이 여긴 이들이..가묘를 만들었다고 하는

애뜻한 사연을 가진 장소기에..여행자들이 한번을 들린다고...,

 

여행 출발 첫날

하늘의 색깔 만큼이나 나도 맑지 못했다.

전날 한밤중에 혼자서..일행과 합류하고..

여행을 시작한 싯점..

사과 홍자 한잔 마시고...언제나 낭군님에게 연락이 오려나

노심초사...기다림..

 

 

 

 

 톱카프 궁전

 

톱카프 궁전은 1453년 오스만제국의 메흐메드에 의해 건설되기 시작하여 1467년

메흐메드 2세 때 완공된 궁전입니다.

오스만제국 최초의 궁전인 에스키 사라이(Eski Sarayı) 이후에 세워졌기 때문에

신 궁전(新宮殿)이라는 뜻으로 처음에는 ‘예니 사라이(Yeni Sarayı)’라고 불렸으나, 궁전 입구 양쪽에 대포가

배치되어 있었던 데 연유하여 톱카프 궁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톱’은 대포, ‘카프’는 문이라는 뜻)

 톱카프 궁전은 15세기 중순부터 19세기 중순까지 약 380년 동안 오스만 제국의 군주인 술탄들이 거주했던 정궁으로,

1856년 돌마바흐체 궁전이 새로 지어질 때까지 오스만투르크제국의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다고 합니다.

거주하는 시종과 군사 관료의 수만 5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출처: '하누너메'님의 블로그(http://blog.naver.com/yugyug2?Redirect=Log&logNo=110031724897)

톱카프 궁전은 이스탄불 구시가지가 있는 반도, 보스포러스 해협과 마르마라해,

 금각만이 합류하는 지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총 면적은 70만평이며,

벽 길이만도 5km나 됩니다. 하지만 이곳의 전체 규모는 원래 크기보다 상당히 축소된 상태입니다.

구조적으로는 메흐메트 2세 때의 기본 설계를 간직하고 있지만, 새로운 술탄이 세워질 때마다

 각자의 필요에 의해서 궁전을 바꾸고 대화재 사건이 네 번이나 일어나면서

 1850년대까지 계속해서 증축되고 보수되는 과정을 거쳐 현재는 불규칙적으로 넓게 퍼져 있는 건축물을

모아놓은 형태로 남아 있고 특별한 건축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지는 못합니다.

 

 하얀색 차도르를 두른 여인들도

우리들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나들이가 즐거운듯..환한 웃음

'제 1 정원'에는 '아야 이레네'성당이 있는데, 4세기경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아프로디테 신전을 개조하여 성당으로 만든 것입니다. 바로 이곳에서 381년

제 2차 공의회인 '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가 개최되었지요. 325년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아리우스파를

배격하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둘러싼 논쟁이 일단락되는 듯 싶었지만,

 콘스탄티누스가 사망하면서 로마제국의 동방은 친아리우스파인 콘스탄티우스가, 서방은 정통

니케아파인 콘스탄스가 각각 다스리게 되면서 교리의 분열이 정치적 분열로 이어졌고 교리의 분열과 대립은 더욱 심화되었지요.

그러다가 379년 테오도시우스가 로마 황제로 등극하면서 교리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교회의 일치를

 도모하기 위해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두번째 세계 공의회를 개최하여 예수그리스도의 신

성만을 인정하는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확립했으며

 마케도니오스의 성령피조설(성령의 신성거부)에 대한 교리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이렇게 기독교 역사상 귀중한 자산이, 니카의 반란 때 아야 소피아와 함께 파괴되었다가

재건되고, 화재와 지진 등으로 손상되었다가 복구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오스만제국이 들어서면서부터는 무기를 보관하는 병기고로 사용되었고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니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톱카프 궁전 단지의 내부는 3개의 문과, 4개의 정원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제 1 정원(예니체리의 정원): 제빵소, 장작 저장소, 진료원, 화폐창, 재무부, 궁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숙소가 있었고

제 2 정원(디완 정원): 국무회의 장소, 주방, 마굿간, 하렘 통로가 있었고

제 3 정원(튤립 정원): 술탄의 시종들과 고위 인사들, 사신들만 드나들 수 있는 곳으로 궁정학교와 제국의 기관들이 있었고

제 4 정원: 술탄의 가족들만 출입이 가능했으며 술탄과 왕자들이 기거하는 별관과 정자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궁전 안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은 ‘바브 휘마윤(아랍어: Bâb-ı Hümâyûn)’이라 불리는 황제의 문

또는 술탄의 문(Saltanat Kapısı)입니다. 문의 바깥쪽에 새겨진 글은 메흐메트 2세가

이 궁전의 건축을 1478년에 완공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문설주에 보이는 가운데 동그란 부분은

 바로 마흐메드의 옥새인 '투라'라고 해요.

황제의 문은 메흐메트 2세 이후의 군주들이 손을 많이 대는 바람에 원래의 모양으로부터 많이 변형되었데오

 

 

 술탄의 의자가 있던 곳

 

  호화로운 카페트..

각가지 보석이 박힌 카페트는 정말 첨 보았다

사치가 극을 이룬 듯...

근데...무지 아름다웠고...신기하기도 하고요.

 손님은 이곳에서 손을 씻고 들어갔다고

 내부 사진 촬영금지

 

 

 

 

 

 

 

 

 

 

 

제 2 정원으로 들어가는 중문(예절의 문; 바브 셀람)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입장권을 끊어서 들어가야 하는데요, 이 문은 술탄만 말을 타고 지날 수 있었고,

 그 외의 사람들은 모두 걸어서 들어가야 했다고 합니다. 역시 이 문의 문설주에도 슐레이만이라는 술탄의 투라가 새겨져 있습니다.

톱카프 궁전 입구에 있는 아흐멧 3세의 샘이 있는 정자로 투르크

 로코코 건축의 수작으로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아쉬웠던 점은

사람들에게 밀려서 제대로 감상을 할 수가 없었던 점이다.

모세의 지팡이도 정말인지 신기하기만 했고

요한의 팔 역시...

유물을 보면서...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다는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육신은 사라져도 이름은 남아있네요...ㅎㅎ